첫차가 떠나기 전, 비어 있는 좌석

📅 2026년 08월 15일 07시 01분 발행

아직 어둑한 새벽, 차고지의 불빛이 바닥의 흰 선을 조용히 살립니다. 첫차가 시동을 걸며 조그맣게 떨고, 차 안등이 하나둘 켜지자 먼지가 빛을 머금고 떠다닙니다. 앞유리에 맺힌 물방울을 기사님이 손수건으로 부드럽게 훑어내는 모습이 보입니다. 전광판은 잠시마다 깜빡이며 행선지를 확인하고, 차내 시계의 초침은 아직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시간을 건너갑니다.

비어 있는 좌석들이 차분히 서로를 바라보는 듯합니다. 이 자리들에는 곧 다른 하루들이 앉겠지요. 밤근무를 마치고 돌아가는 어깨가, 먼 진료를 향해 마음을 단단히 묶은 발걸음이, 아직 꿈결을 머금은 학생의 눈동자가, 묵묵히 생계를 적시는 손들이. 자리는 말이 없지만, 누구를 기다리는지 아는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그 모습을 한참 바라보니 마음에도 저런 좌석이 하나쯤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빈자리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약속과 염려, 설명하려는 말들과 미루어둔 숙제들이 빼곡히 앉아 움직일 틈을 주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조용한 사연이 들어설 여백이 없고, 하나님께서 앉아 바라보실 자리가 남지 않습니다. 그런데 비어 있는 좌석은 낭비가 아니라 준비된 환대처럼 보입니다. 아직 오지 않은 이를 위해 온도를 맞추고, 먼지를 털어놓은 기다림. 어쩌면 신앙이라는 것도, 먼저 자리를 내어두는 일에 가까운지 모르겠습니다.

버스는 모든 좌석이 차야만 길을 떠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불이 켜지고, 조심스러운 소리로 브레이크가 숨을 내쉴 때, 그 자체로 이미 하루가 움직이고 있습니다. 우리 삶도 비슷하지요. 다 정리되지 않아도, 마음 한켠이 비어 있어도, 출발을 미루지 않습니다. 빈자리는 방향을 잃게 하지 않고, 오히려 들어올 사람과 닿아야 할 이야기를 위해 공간을 남겨둡니다.

사람이 한 명씩 올라타듯, 하나님도 우리를 이름으로 부르신다고 하셨지요.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그 부르심은 크게 울리지 않아도, 새벽 차고지의 희미한 안내 방송처럼 제 마음 어딘가에서 또렷이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 목소리가 닿을 자리, 막 밀려난 걱정들과 변명 사이에서 조용히 빛나는 한 칸. 그 자리를 확보해 둔 날에는, 설명보다 침묵이 더 분명해지고, 서둘러 앞서가기보다 함께 앉아 가는 법을 떠올리게 됩니다.

빈좌석 앞에 서 있던 기사님이 의자 등받이를 한 번 톡톡 두드리고 자리로 돌아가 시트를 정리합니다. 유리에 반사된 회색 하늘이 아주 옅게 밝아옵니다. 첫 정거장으로 나가는 문이 열리고, 찬 공기가 한 번 스쳐 지나갑니다. 마음속에서도 그런 바람 한 줄기 대신, 잔물결처럼 잔잔한 텀 하나가 생기면 좋겠습니다. 누군가의 피곤이 잠시 기대어 숨 고를 수 있는 자리, 하나님이 제 이름을 불러 앉으실 수 있는 자리. 그렇게 첫차가 서서히 궤도에 오르듯, 오늘의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따뜻한 방향을 찾아가게 되겠지요. 아직 캄캄하지만, 이미 길은 열려 있다는 사실을, 비어 있는 한 좌석이 조용히 알려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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