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08월 22일 07시 01분 발행
저녁 설거지를 마치고 싱크대 아래 서랍을 열었습니다. 소금통을 꺼내려다, 어딘가로 흘러 들어간 얇은 종이 한 장이 손끝에 닿았습니다. 누렇게 빛이 오른 모서리, 연필로 눌러 쓴 글씨, 오래전에 묻은 참기름 자국. 한 줄 한 줄 따라 읽다 보니, 누군가의 부엌에서 살아온 시간이 조용히 되살아났습니다.
메모에는 정확한 숫자가 거의 없었습니다. 미역 한 줌, 파는 손가락 두 마디만큼, 소금 한 꼬집, 간은 마지막에 본다. 주방 저울이나 계량컵 대신 손바닥과 코끝과 혀끝이 기준이던 날들의 문장들이었습니다. 정교한 표처럼 반듯하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 믿음이 갔습니다. 그때그때 달라지는 마음과 재료의 기분을 알아차리는 글씨였기 때문이겠습니다.
우리의 하루도 그런 방식으로 익어가는지 모르겠습니다. 치수를 맞추듯 깔끔하게 떨어지지 않는 일들이 있고, 분명히 했는데도 어딘가 허전하게 남는 마음이 있습니다. 표를 채우고도 설명되지 않는 부분을, 관계의 온기와 기다림의 시간, 말없이 건네는 눈빛이 메워 줍니다.
사람 사이의 간도 그와 비슷합니다. 말은 한 줌이면 충분할 때가 있고, 침묵은 한 꼬집이면 딱 좋을 때가 있습니다. 서둘러 끓여 올린 대화는 쉽게 넘치고, 약불에서 오래 놀아 준 마음은 스스로 맛이 깊어집니다. 누구에게나 지켜 주고 싶은 간이 있습니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서로가 서로를 상하게 하지 않는 적정선 말입니다.
국물이 끓기 직전의 조용한 떨림을 보고 있으면, 성급함이 제풀에 수그러듭니다. 거품이 몇 개 피어오르다가 사그라지는 그 순간, 그릇의 바닥에서부터 무언가 단단히 이어지는 느낌이 납니다. 말이 앞서지 않고 온도가 말해 주는 시간. 그 사이를 견디는 동안 맛이 모입니다.
기도가 그럴 때가 있습니다. 할 말이 많지 않은 밤, 향처럼만 남아 돌던 마음이 보이지 않는 손길에 젖어듭니다.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시편 34:8)라는 문장이 낯익은 냄새처럼 스며듭니다. 대답이 당장 오지 않아도, 선함이 식탁 가까이에 서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숨이 고르게 정리됩니다.
어느 날은 짜게 지나가고, 또 어떤 날은 지나치게 싱겁습니다. 부주의했던 말 한마디, 괜히 닫아 버린 표정이 종일 혀끝에 남는 저녁도 있습니다. 그럴 때 국에 물을 조금 보태듯, 마음에 작은 여백을 보태 보았습니다. 끓는 시간을 다시 허락하니, 서운함이 누그러지고 깊이가 도는 순간이 있었습니다. 실패도 그렇게 다시 익어 가는 것인지 모릅니다.
손글씨 메모의 획 사이로, 한 사람의 체온이 전해졌습니다. 급히 쓰다 고쳐 쓴 흔적, 숫자를 적었다가 지워 버린 박박한 자국, 마지막 줄의 ‘간은 네 입맛대로’라는 너른 결말. 누구의 지혜는 언제나 이렇듯 남아 있었습니다. 완벽한 답 대신, 흔들림을 품은 길.
생각해 보면, 삶의 중요한 것들은 다들 이런 식으로 전해졌습니다. 정확한 법칙보다 손의 습관으로, 설명보다 함께 서 있던 시간으로. 정답이 없다는 말이 무책임하게 들리던 젊은 날도 있었지만, 이제는 그 말이 건네는 신뢰를 압니다. 당신의 맛을 믿는다는 뜻, 당신의 오늘을 존중한다는 뜻 말입니다.
서랍을 닫으며, 메모를 다시 그 자리에 조심스레 미끄려 놓았습니다. 내일의 반찬이 무엇일지 몰라도, 손은 이미 길을 압니다. 마음도 그렇겠습니다. 수치와 목표 사이에서 길을 잃을 듯 흔들리다가도, 금세 누군가의 안부와 작은 배려, 늦게까지 켜 둔 불빛을 따라 제 온도를 되찾습니다.
오늘 밤 부엌에는, 막 불에서 내린 국에서만 나는 소리가 낮게 남아 있었습니다. 식는 동안 더 깊어지는 향이 방 안으로 천천히 번졌습니다. 말없이 곁을 지키는 선함이 있다는 사실이, 이 밤의 간을 맞춰 주었습니다. 내일 아침 다시 덥히면 더 좋아질 국물처럼, 우리의 마음도 그때에 맞게, 그 맛으로 익어 가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