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실에 머무는 시간

📅 2026년 08월 24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뒷골목에 아직 필름을 받는 작은 사진관이 있습니다. 유리문에 종이 종이 울리면 주인 어르신이 천천히 걸어나오지요. 유리 진열장엔 흰 봉투가 줄 지어 서 있고, 오래된 카메라들이 빛을 먹은 듯 깊게 앉아 있습니다. 안쪽으로 들어가면 붉은 조명이 켜진 암실이 나타납니다. 식초 비슷한 냄새와 따뜻한 물기가 공기 속에 얇게 퍼져 있습니다. 주인 어르신이 집게로 인화지를 옮겨 담그면, 텅 빈 하얀 종이 위에 어둡고 연한 얼룩이 서서히 모여 얼굴 하나를 만들어갑니다. 물이 스치는 소리, 종이가 젖으며 부풀었다 가라앉는 숨결 같은 움직임. 그 조용한 순간을 보고 있으면, 세상에 급할 것이 무엇인가 하는 마음이 슬그머니 듭니다.

주인 어르신이 말하셨습니다. “급히 꺼내면 얼룩이 남습니다.” 그 말이 그날따라 마음에 오래 머물렀습니다. 저도 무언가를 빨리 결론내리고 싶은 마음이 앞설 때가 많습니다. 오해를 당장 풀고 싶고, 상처를 곧바로 치유하고 싶고, 기도의 응답도 오늘 안에 듣고 싶습니다. 그런데 삶의 어떤 장면들은 암실을 지나야 비로소 드러나더군요. 말이 아직 고르게 말라붙지 않았을 때는 침묵이 안전한 빛이고, 용서가 막 스며들기 시작한 때는 기다림이 가장 따뜻한 물입니다. 미처 정리되지 않은 감정과 생각을 성급히 꺼내보이다가 얼룩처럼 남겨본 경험, 아마 누구에게나 있겠지요.

암실은 어둡지만 무서운 곳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빛이 금지되는 대신, 빛이 일합니다. 선명함이 빠르게가 아니라 정확하게 오도록, 보이지 않던 결이 서서히 솟아오르도록 조용한 시간이 도와줍니다. 시편의 고백이 떠오릅니다. “어둠도 주께 어둡지 아니하며”(시편 139:12). 보이지 않는 동안에도 보시는 분이 계시니, 우리 눈에 캄캄해 보이는 시간도 사실은 한 장의 사진이 태어나는 자리일지 모릅니다.

암실에서는 물이 맑아질 때까지 여러 번 헹굼을 합니다. 흔적이 남지 않도록, 시간이 지나도 사진이 변질되지 않도록 말이지요. 관계에도 그런 헹굼이 필요한 때가 있습니다. 이유를 설명하기 전에 상대의 표정을 더 오래 바라보는 헹굼, 다 옳다고 느껴져도 한 번 더 마음을 저어보는 헹굼, 기도 제목을 늘어놓은 다음 한동안 조용히 숨을 고르는 헹굼. 그러고 나면 억지로 만든 선명함이 아니라, 스스로 떠오른 선명함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암실 밖으로 걸어 나오면 햇빛이 조금 눈부십니다. 주인 어르신은 젖은 사진을 집게로 집어 올리고, 물방울이 모서리에서 한 알 한 알 떨어집니다. 흰 줄에 걸린 사진들이 바람도 없이 천천히 말라갑니다. 그 곁에서, 제 마음의 한 장면도 저렇게 어디에 걸려 있는 듯 느껴졌습니다. 아직 마르지 않아 손대기 조심스러운 장면, 그러나 분명히 모습을 갖추어 가는 장면. 누구에게도 서두르지 말라고 말하지 못하겠지만, 저 자신에게만은 그렇게 말해 보고 싶었습니다. 지금은 암실의 시간일 수 있다고, 여기가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고.

이따금 일기는 인화지 같고, 기도는 현상액 같고, 조용히 흐르는 하루의 리듬은 세척수 같습니다. 포개어 둔 흰 장들 사이에 오늘의 한 장을 조심스레 끼워두면, 내일쯤 더 또렷해지는 줄을 제 마음이 기억합니다. 그렇게 나온 사진은 쉽게 버리지 못합니다. 빛과 어둠을 함께 통과했기 때문이겠지요. 우리의 하루도 그러합니다. 아직 설명할 수 없는 얼룩 같던 것들이 언젠가 하나의 얼굴, 한 장의 이야기로 나타나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때 비로소 알게 됩니다. 어둠 속에서도 일하시는 손길이 있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손길이 끝까지 책임지려는 마음으로, 우리 삶을 붉은 조용함 속에 잠시 맡겨 두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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