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10월 12일 07시 01분 발행
밤의 마트에 마지막 안내 방송이 퍼집니다. 천장의 전등이 한 줄씩 덜 밝아지고, 계산대마다 남은 카트들이 천천히 줄을 맞춥니다. 바코드 스캐너의 짧은 소리가 간격을 두고 울릴 때, 사람들의 어깨가 조금 수그러드는 모습이 보입니다. 유통기한이 가까운 우유와 반값 스티커가 붙은 빵, 다듬다 남은 파 한 단이 누군가의 손으로 자리를 옮깁니다. 그 손등에는 하루의 물건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건넸다는 흔적이 번들거립니다. 영수증 끝에 찍힌 “오늘도 수고하셨습니다”라는 인사가 어쩐지 실제 목소리보다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이 시간의 공기에는 ‘남은 것’의 냄새가 납니다. 아직 괜찮지만 내일이면 빛을 잃을지도 모르는 것들, 제때 쓰이지 못해 한쪽에 모여 있던 것들. 마음에도 비슷한 코너가 하나쯤 자리하고 있습니다. 말하지 못한 인사, 서랍에 밀어 둔 미안함, 괜찮다 하고 돌아섰으나 밤이 되면 다시 살아나는 근심. 마트는 폐점 전에 재고를 정리하지만, 우리는 하루의 재고를 어디에 쌓아 두는지 스스로도 모를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참 이상합니다. 불이 덜 밝아질수록, 사람들의 숨은 도리어 고르게 변합니다. 마치 ‘오늘’이라는 이름표가 서서히 떼어지는 것을 지켜보는 마음이 잔잔해지는 것처럼요.
예수께서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 하셨다는 한 구절이 생각납니다(요 6:12). 기적 뒤의 조용한 수거 작업. 배불리 먹은 이들보다, 흩어져 있던 빵 부스러기를 모으는 손길이 유난히 눈에 들어옵니다. 풍성함은 종종 그 뒤처리를 통해 더 깊어집니다. 우리에게도 버려지지 않아야 할 조각이 있습니다. 잘못한 말 속에 담긴 마음의 떨림, 곁을 맴돌다 사라진 용기의 호흡, 눈물 직전까지 올라왔다가 겨우 내려간 울컥임. 그 조각들을 그냥 쓸어담아 쓰레기통에 넣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이 이 말씀 안에 숨겨져 있는 듯합니다.
집으로 돌아와 장바구니를 푸는 순간, 오늘이 은은하게 풀립니다. 싱크대 금속 위로 물방울이 또렷하게 부서지고, 가스불 작은 불꽃이 한 점씩 서서히 살아납니다. 냄비에 파를 넣자 향이 퍼지고, 약한 보글거림이 주방의 시계를 다른 속도로 움직이게 합니다. 탁자 위에 내려놓은 빵 하나, 흰 그릇 위를 미끄러지는 숟가락 소리 하나가 이상할 만큼 큰 위로가 됩니다. 집이라는 장소가 가진 마감의 기술은 고요 속에서 작동합니다. 오늘의 무게를 일일이 묻기보다, 자리 하나씩 내어 주어 정리하게 하는 기술입니다.
마트의 저울은 사과의 그램을 셉니다. 그러나 주님의 마음은 무게로 사람을 재지 않으십니다. 값표로는 환산되지 않는 표정과 기다림, 참아 낸 말과 포기하지 않은 걸음을 기억하십니다. 계산대 줄에서 한 칸씩 앞으로 나아가며, 각자 자신의 생각 속으로 한 칸 더 들어가는 모습 또한 그분의 눈길을 피하지 않습니다. 스캐너의 삑 소리가 오늘의 회계를 끝낸다는 신호처럼 들리다가도, 가만히 귀를 대고 있으면 그것이 살아 있다는 표시, 심장의 규칙 같은 리듬으로 들립니다.
문득, 남은 것들을 하나님께서 모으시면 어떤 바구니가 될까 상상해 봅니다. 버리지 않고도 가볍게 할 수 있는 힘, 서운함을 기억하면서도 얽매이지 않게 하는 너그러움, 내 몫의 부족함 속에서 발견하는 기묘한 충만함. 마트의 불이 하나둘 꺼지고 나면, 유리문에 비치던 하루의 모습도 서서히 사라집니다. 그 시간, 우리가 쥐고 있는 영수증은 길게 늘어선 숫자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냈다는 조용한 증언처럼 느껴집니다. 남은 조각을 들고도 마음이 비워지는 감각, 어쩌면 그 자리가 은혜가 내려앉는 자린가 봅니다.
폐점 방송이 마지막 인사를 건네고, 문턱을 나서는 발걸음이 저녁의 온도로 가라앉습니다. 오늘 내내 놓치고 지났던 것들이 어둠 속에서 또렷해집니다. 떼어 낸 스티커처럼 마음에 묻은 풀자국이 남더라도, 그 끈적임마저 주님의 손에 맡겨 보면 한밤의 공기가 덜 차갑게 느껴집니다. 남은 조각을 허투루 하지 않으시는 분이 계시다는 사실이, 내일을 여는 첫 불빛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