밑창을 갈던 오후

📅 2026년 10월 17일 07시 01분 발행

골목을 꺾어 들어가면 작은 구두 수선소가 있습니다. 유리 진열대 뒤쪽으로 오래된 라디오가 낮은 볼륨으로 돌아가고, 가죽과 본드가 섞인 냄새가 둥글게 감돕니다. 사장님께 구두를 건네며 멋쩍게 웃었습니다. 밑창이 얇아져 비 오는 날엔 금세 젖었습니다. 사장님은 구두를 뒤집어 들고 빛을 비추어 보시더니, 괜찮다고, 덧대면 새 힘이 난다고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셨습니다.

작은 망치가 규칙적으로 탁, 탁, 소리를 냅니다. 실과 송곳이 번갈아 오가며 가죽을 촘촘히 꿰맵니다. 그 사이 저의 하루도 함께 꿰매지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말로 풀지 못했던 마음의 해짐,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던 얇아진 부분들이 낱낱이 드러나지 않으면서도, 이상하게도 손볼 자리는 정확히 짚어지는 느낌이었습니다. 박음질은 서두르지 않았고, 서두름이 없으니 손놀림이 곱게 이어졌습니다. 사람의 다정이 꼭 큰 말 속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을, 그 작은 규칙성에서 다시 배웠습니다.

벽시계의 초침이 한 칸씩 옮겨갈 때마다, 맡겨진 신발들 사이로 서로 다른 발걸음의 사연이 스미는 것 같았습니다. 여행이 멈춘 구두, 일터의 먼지를 묵묵히 품은 안전화, 자주 뛰어다니던 아이의 운동화. 각자의 밑창엔 서로 다른 길의 마모가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수선대 위에 오르니 모두 같은 정성으로 다루어졌습니다. 해짐이 부끄러움이 되지 않고, 돌봄의 이유가 되는 자리. 그 풍경이 위로처럼 마음에 남았습니다.

낡은 밑창을 떼어내자, 구두의 바닥엔 깨끗한 면이 드러났습니다. 쓰이지 못했던 결이 희미하게 반짝였지요. 사장님은 새 밑창을 맞춰 대고, 못을 네댓 개 골라 박으셨습니다. 한 번, 두 번, 세 번, 네 번. 못이 들어갈 때마다 묘한 안도감이 올라왔습니다. 누군가 저를 위해 작고 정직한 반복을 이어갈 때, 마음은 말보다 먼저 쉼을 찾았습니다.

문득 마음속으로 한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오래 걸어 얇아진 자리에도, 등과 빛은 생각보다 가까이에 있었던 모양입니다. 큰 표어처럼 내걸리지 않아도, 오늘의 걸음을 비출 만큼의 불빛은 조용히 따라왔습니다.

수선이 끝난 구두를 받아 들고 문을 나서니, 저녁 습기가 골목에 내려앉아 있었습니다. 발을 들여놓는 순간, 바닥과 새 밑창이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소리가 났습니다. 같은 길인데 발끝의 감각이 달라지니 풍경도 약간 다르게 보였습니다. 큰 변화는 아니었습니다. 다만 어제보다 한 발 더 편안해지고, 멀리 가기보다는 또렷하게 서 있을 수 있게 된 정도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 마음에도 이런 수선대가 마련되어 있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누군가의 한마디, 한 끼의 따뜻한 밥, 뜻밖의 안부 전화. 그 작은 못 하나하나가 삶을 다시 붙들어 주었습니다. 표면만 닦아낸 날보다, 속을 들여다보며 기다린 날이 오래 남듯이, 오늘의 정적도 제 안에서 오래 머물 것 같았습니다.

골목 끝으로 저녁 불빛이 번집니다. 호주머니에서 구두주걱을 만지작거리다, 괜히 손을 다시 집어넣었습니다. 이제 급히 뛰지 않아도 될 것 같았습니다. 한동안은 이 새 밑창의 박음질을 믿고, 조용히 내딛는 소리만 듣고 싶었습니다. 그 소리 사이로 보이지 않는 분의 손길이, 말없이 계속해서 우리를 지탱하고 계신다는 마음이 살며시 따라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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