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울 위에 남은 오후

📅 2026년 06월 04일 07시 00분 발행

시장 문을 반쯤 닫은 시간, 마지막 손님이 배추 한 포기를 고르셨습니다. 상인은 주머니에서 고무줄을 빼내어 묶고, 쪽파 한 줌을 조용히 얹었습니다. 저울판 위에서 바늘이 잠깐 흔들리다 자리를 찾았습니다. 작게 찰칵 하고 멈추는 그 소리가 오늘의 끝을 알려 주는 종처럼 들렸습니다.

저울 주위엔 하루의 흔적들이 널려 있었습니다. 양파 껍질이 비닐처럼 말려 있었고, 토마토 몇 알은 멍이 들어 단내가 났습니다. 생선 가게 앞 얼음은 거의 녹아, 좁은 물길을 만들며 하수구로 흘러갔습니다. 물은 부스러진 햇빛을 싣고 내려가다가 어느 틈에 사라졌습니다. 가게마다 전등을 하나씩 줄이며 남겨둔 빛을 접는 모습이, 사람들의 마음도 이렇게 조심스레 접히겠구나 싶었습니다.

저울 바늘이 자리를 찾을 때마다, 오늘 내 마음의 바늘은 어디쯤 서 있는지 떠올리게 됩니다. 누군가의 다정한 말 한마디가 올려놓은 온기, 예기치 못한 일로 더해진 피로, 미처 하지 못한 말이 남기는 사소한 무게. 어떤 날은 한쪽으로 기울어 보이다가도, 누가 모르게 덤처럼 얹어지는 친절이 균형을 맞추곤 하셨지요. 시장 상인이 슬쩍 올려주는 한 줌의 채소처럼, 하루의 끝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선의가 얹힐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문득, 주님이 “너희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다”고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어쩌면 우리 마음의 무게도 그렇게 아시겠지요. 말하지 못해 남겨진 서운함의 곡선, 애써 담담히 넘긴 순간의 떨림까지, 숫자로는 셀 수 없지만 분명한 흐름으로. 누가 재어 보지 않아도, 누구는 알고 계신다는 사실이 홀가분한 안쪽을 만듭니다.

상인은 마지막 영수증을 뽑아 작게 접어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얇은 종이인데도 손끝에 뜨거움이 오래 남았습니다. 우리도 하루의 영수증 같은 것을 마음에 끼워 두고 돌아오곤 하지요. 쓴 항목도 있고, 뜻밖의 할인처럼 가벼워진 지점도 있고, 금액으로 환산되지 않는 표정 하나가 크게 차지하는 줄도 있습니다. 때로는 계산이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돌아와 가방을 풀다 보면, 아침에 스스로도 잊고 나선 결심이 조용히 다시 나타나 균형을 맞추어 줍니다. 작은 쪽지처럼, “그래도 오늘 잘 버텼다”고 적혀 있는 글씨.

얼음물은 계속 흘러 바닥의 체온을 낮춥니다. 그 위로 사람들이 하루를 넘겨 짚듯 발자국을 옮기고, 멀어지는 발소리가 시장의 숨을 닫습니다. 이상하게도, 이렇게 정리되는 소리를 듣고 있으면 마음속 어지러웠던 장면들도 모서리가 정리됩니다. 남겨진 것은 남겨진 대로 두어도 괜찮겠다는 생각, 내일의 장사는 내일의 손으로 다시 펼쳐질 것이라는 느긋함이 따라옵니다.

오늘의 저울이 보여 준 것은, 결국 무게만이 아니었습니다. 더운 시간에도 서 있던 등줄기의 성실함, 손님을 배웅하는 손끝의 습관, 서로에게 덤으로 얹는 인정이 만들어 낸 균형점이었습니다. 그 균형점은 소리 없이 우리를 중심으로 부르고, 그 중심에 서 보려 할 때 마음은 뜻밖에 가벼워졌습니다. 무엇을 더 얹을지보다, 이미 얹혀 있는 것들을 알아차리는 일만으로도요.

집으로 돌아오는 길, 손에 든 봉지는 생각보다 묵직했습니다. 하지만 묵직함만이 전부는 아니었습니다. 낯선 하루를 견디게 한 말없이 나눈 눈인사, 기다림 속에 들씌워진 인내,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받은 덤 같은 은혜. 저울의 바늘이 멈추는 그 작은 소리만큼이나, 오늘도 제 안 어딘가에서 균형이 맞춰졌다는 느낌이 남았습니다. 그 느낌이 내일의 장을 다시 펼 힘이 된다면, 오늘의 무게는 잘 재어진 셈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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