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소를 적는 오후

📅 2026년 08월 17일 07시 01분 발행

동네 우체국 포장대에 늦은 오후의 불빛이 담담히 내려앉습니다. 갈색 상자들이 서로의 모서리를 조심스레 맞대고 서 있고, 테이프를 누르다 떼는 소리만 얇게 울립니다. 종이 냄새, 잉크 냄새, 오래 쓴 펜의 둔한 감촉이 공기 속에 섞여 있습니다. 번호표를 손에 쥐고 기다리는 이들의 표정도 대체로 비슷합니다. 마음을 한 번 접고, 다시 펼치는 얼굴들입니다.

포장대 위에 놓인 송장에는 ‘보내는 이’와 ‘받는 이’ 두 칸이 서로 마주 보고 있습니다.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이 단순한 구조가 이상하게 마음을 붙잡습니다.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 내려갈 때, 우리는 그 사람을 마음속으로 한 번 더 초대하는 것 같습니다. 글자 사이사이에 그리움이 개입하고, 주소 한 줄이 짧은 안부처럼 읽힙니다.

옆자리에는 작은 유리병에 담긴 잼을 포장하는 분이 계십니다. 유리병이 상자 안에서 흔들리지 않도록 신문지를 잘게 말아 넣고, 모서리를 손바닥으로 몇 번 눌러 다독입니다. 다른 이의 상자에서는 낡은 책이 비닐 속에 조용히 누워 있습니다. 책갈피에 누군가의 메모가 잠깐 보였다가 사라집니다. 사람마다 다른 마음의 온도, 다른 무게와 모양이 오늘도 우편으로 길을 떠납니다.

스티커 한 장을 붙이는 일에도 사연이 묻어 있습니다. ‘파손주의’라고 적힌 붉은 글씨를 천천히 눌러 붙일 때, 표정이 조금 더 신중해집니다. 쉽게 깨질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누구나 자신만의 목록을 품고 사는 듯합니다. 말을 건넬 때도 그렇지요. 어떤 말은 포장을 서둘러 모서리가 들뜨고, 어떤 침묵은 완충재를 너무 두껍게 둘러 결국 닿지 못합니다. 한 번 더 다듬고, 한 번 더 적당한 여백을 남겨 두는 일이 우리 사이에도 필요해 보입니다.

‘보낸 이’와 ‘받는 이’ 사이에는 늘 시간이 있습니다. 이동의 시간, 분류의 시간, 때로는 예상치 못한 지연의 시간. 우체국의 사람들은 그 틈을 알고 묵묵히 제 일을 합니다. 도장이 상자 위에서 탁, 하고 남긴 흔적처럼, 기다림은 도착의 반대가 아니라 과정의 일부라는 사실을 조용히 상기시켜 줍니다. 마음을 보낸다는 일에도 꼭 이런 시간이 있겠지요. 미리 도착하지 않지만, 늦게 오는 것도 아닙니다. 때가 되면 문 앞에 놓입니다.

성경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노라”(사 49:16). 주소를 적는 손끝을 바라보다가, 문득 그 구절이 떠올랐습니다. 잊히지 않도록, 잃어버리지 않도록, 손에 새긴 이름. 그분의 기억 속에서 우리는 누락되지 않고, 반송되지 않고, 쏟아지지 않도록 다루어집니다. 파손주의 스티커보다 더 섬세한 주의가 우리의 하루를 덮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자리에 앉아 마지막으로 주소를 확인하는 순간, 눈에 들어오는 것은 글자보다 사이의 여백이었습니다. 오늘 제 마음의 주소는 어디를 향하고 있었을까요. 급히 붙인 사과는 없었는지, 미뤄 둔 감사는 어디쯤 놓여 있는지, 상자 안의 어수선함을 손바닥으로 한 번 더 매만져 봅니다. 모서리를 차분히 눌러 주듯, 말의 끝도 부드럽게 닫히면 좋겠습니다. 도착한 상자를 연 누군가의 하루가, 그 작은 배려 하나로 조금 가벼워질지 모르니요.

문밖으로 나오니 테이프 자국 같은 빛이 인도하는 길이 얇게 이어져 있습니다. 누구에게서 누구에게로 흐르는 이 긴 연결의 세계에서, 저마다의 이름이 온전히 불리고 불리는 일. 오늘도 그 사이 어딘가에서, 제 마음도 조용히 떠나고 도착하고 있음을 느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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